시흥 시화병원 응급의학과장 최영미 집사, 지구촌 이재민들의 ‘수호 천사’
- 기사출처국민일보
- 등록일05/26/2015


그 순간 최 집사가 떠오른 건 당시 그와 나눴던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최 집사는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긴급구호대 의료대 1진으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파견돼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에 참여했다. 에볼라 감염 환자를 채혈하다 손가락에 주사바늘이 스쳤고, 독일 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격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자칫 에볼라 감염 위험에 놓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험한 곳에 남매를 둔 엄마 의사가 달려간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이런 말을 했었다.
“가는 거 자체는 저한테 큰 일이 아닙니다. 아무도 안갈 것 같아서 나라도 좀 가자는 건데…. 재난이나 재해를 만나면 의료인은 항상 부담이 있는 거 같아요. 물러서면 안 된다는…. 게다가 신앙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최 집사는 지난 4∼8일 다일긴급재난구호 3진 의료팀으로 네팔 신두팔초크 상가촉바자 마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아주대 정형외과 이재헌 교수와 전 고신대복음병원 감염내과 박교연 간호사가 함께했다. 최 집사와는 ‘페북 친구들’이다. ‘네팔에 가려고 하는데, 혹시 함께 가실 분은 연락해달라’는 글에 이들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섰다. 특히 박전 간호사는 최 집사와 에볼라 퇴치에 같이 힘썼던 의료대원이었다. 지난 12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한 카페에서 석 달여 만에 최 집사를 다시 만났다. 병원 응급실에서 밤샘 당직한 뒤라 피곤해보였다. 평일 오후라 그의 두 자녀도 함께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는 좀 피하려고 했어요. 네팔에 간 그 주간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아들 생일까지 있었거든요. 여행 계획까지 세웠는데…. 지진이 나던 날, ‘아! 놀러가야 되는데 이거 큰일났다’ 이 생각부터 들면서 가야한다, 또 피하고 싶다는 두 마음이 상충하더라고요. 그런데 가족이 이젠 ‘그러려나보다’ 해요. 큰 딸이 아무렇지도 않게 ‘잘 다녀오세요’ 그러더라고요. 남편은 벌써 예상한 것 같았고요.”
그가 네팔에 들어간 시점은 초반 혼돈의 시간을 거친 뒤였다. 장사하는 사람은 그대로 장사하고, 무너진 잔재 위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최 집사가 봉사활동을 펼친 곳은 카트만두에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산꼭대기 마을이었다. 밖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감기 환자들이 많았다. 근육통, 불안·수면장애, 고혈압, 당뇨 환자들도 많았다. “너무 안타까운 건, 고혈압, 당뇨 약들을 챙겨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약들은 워낙 단가도 높고…. 솔직히 말하면 미처 그 약들까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시 나갈 땐 이들 약 외에도 신경정신과나 수면제, 항불안제 등도 챙겨가야겠어요. 아이들 약은 가루로 따로 준비하고요.”
최 집사 일행은 하루에 220∼250명의 환자들을 돌봤다. 돌덩이가 허리에 떨어져 고통을 호소하는 이부터 60대 한 할머니는 무릎 인대가 나갔음에도 제때 치료하지 못해 반대로 구부러졌다. 많은 이들이 찢어진 발로 구호활동을 하다보니 그 부위가 벌어진 채 그대로 굳어 더 이상 손쓸 수 없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환자들이 길게 이야기해도 절대 끊지 않고 충분히 들어줬습니다. 큰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최 집사는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잊지 못한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60여명의 어린이들과 현지 목회자, 현지인 크리스천 가정, 봉사자들이 함께 모여 큰 고목나무 밑에서 예배를 드렸다. 다일긴급재난구호팀을 이끈 최일도 목사가 "하나님이 지금의 고난을 주신 건, 당신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다. 당신들을 강건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며 이 터를 더욱 견고히 하시려고 고난을 주신 것"이라며 위로했다. 때마침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올 여름과 가을쯤 두 차례 최 집사는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더 갖는다. 이에 앞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또 떠날 계획이다. "수많은 날 중에 이렇게 5일 갔다가 오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왜 꼭 당신이냐고들 생각하실 수 있어요. 짧은 기간에 극히 일부 지역에서 극히 적은 사람을 만나고 오지만, 저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많은 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잖아요.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니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짐은 언제나 봇짐 하나입니다. 그거 짊어지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 언제든 떠날 작정입니다."